오늘은 2006년 10월 26일
며칠전 운명을 달리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오래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각종 행사에 비서분이 근황을 전해왔는데 몇 해 전 부인이 작고한 뒤 건강이 더 악화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고인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학생시절을 보냈고, 고인이 집안 족보에 필자와 몇 장 차이로 올라있는 것을 보았지만 얼굴 한 번 뵈온 일 없고, 전화통화 한 번 한 일도 없다.
고인이 잠깐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대통령의 고향이라고 하여 그런지 몰라도 그 산골짜기에 도로포장공사를 한다는 사실을 듣고 역시 대통령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였을 정도였다.
오히려 10.26. 직후 외무부장관으로서 대통령권한 대행이던가로 처음 부인과 함께 신문과 티브이에 등장하였을 때
고인이 오랫동안 외교관생활을 하였음에도 부인이 전문 외교관의 부인이라고 하기보다 평생 집안살림이나 한 것같이 수수한 모습이어서 낯설은 느낌마저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10.26. 사건이 일어난지 26년이 되는 날
그 사건의 진실과
그뒤에 있었던 복잡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고인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당한 날
당시 유신체제 이후 반정부세력들의 불만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1977년 출범한 미국의 카터 행정부와 유신정권이 반목하는 등 국내외로 불안이 가중된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79년 10월 16일 부마사태가 발생하고 계엄령과 위수령이 발동되었으며 부마사태에 대한 대책마련과정에서 집권층 내부의 갈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와 경호실장 차지철의 권력다툼이 대국민정책의 노선대립으로 이어지고, 대통령이 차지철의 강경노선을 채택하자 위기감을 느낀 김재규가 대통령과 차지철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도 10·26사태의 진상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부마사태가 일어나고
신문과 티브이에서 그 내용이 보도되지 않기 시작한 지 여러날
고시반 기숙사에서 새벽운동을 나가던 필자는
어떤 신문인지 여기저기 뿌려진 호외를 보았다.
“대통령 유고!”
주먹뗑이만한 크기의 제목만 있고, 내용은 부실한 호외
“유고”가 무엇이냐? 뭔 소리여?
모든 국민들은 필자와 똑같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 시간에 대통령의 시신은 경복궁 앞에 있던 보안사령부 대통령치료실로 옮겨졌다.
당직의사도 몰라본 대통령의 시신
바짓단이 다 헤어진 오래된 바지...
십년 이상 오랫동안 차고 있던 세이코시계...
가죽이 닳고닳아 헤어진 혁대와 스테인레스 버클....
독재자라고 질타 당하던 가난한 대통령은 그렇게 갔다.
군사정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미국 대신
독일에 차관을 구하러 갔다가
광부들과 간호원들을 모아놓고
여러분들의 봉급을 담보로 차관을 얻었다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던...
대통령은 그렇게 갔다.
3선개헌만 하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그렇게 잃지는 않았을 터인데...
10월유신만 하지 않았다면
비참하게 부하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는 죽음으로 그동안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의 원한을 스스로 갚았다.
그는 죽음으로 우리에게 다시는 일인 장기집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갔다.
대통령이 세상을 뜬 그 시간에
권력을 꿈꾸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궁리들이 오가고
이런저런 대책과 꿍꿍이들이 만들어졌다.
그것의 연장이 대통령이 떠난 26년 동안의 우리나라가 되었다.
고인의 뒤를 이은 훌륭한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는 부강하고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
세월보다 무서운 것이 어디있을까?
말 많고 탈도 많은 전직 대통령들....
힘도 좋고 정력들도 좋은 어르신들....
이제 세월이 흘러흘러 모두 노인이 되었다.
최규하 대통령!
그러나, 그분은 어떤 이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한마디 원망도 단 한마디 변명도 하지않고
말없이 떠났다.
각하!
가실 때는 말없이 가시더라도
그곳에 가시걸랑
세종대왕과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장군
그리고, 조국과 자유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그 많은 젊은이들
먼저 가신 그분들에게
그동안 하고접던 말씀과 보고들은 것을 모두 고하셔서
부디 갈갈이 찢어져 부서져가는 이 나라
이념과 고집만으로 똘똘 뭉쳐 반대집단의 파멸만 갈구하는 극단적인 대립으로 위기를 맞은 이 나라
미친 사람들이 날뛰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의 흉내를 내는
원숭이들의 나라
하지만 님들이 평생을 살다가신 이 나라
님들의 뼈와 그 자손들의 뼈가 대대로 묻힐
이 나라를 어떻게 좀 지켜주소서
목구멍이 포도청인 이 나라의 중생들은
님이 가시는 영결의 장에도 임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일터에서
끓어오르는 심장만 부둥켜안고
아주 가시는 님을 향하여 마음만 보내옵니다.
님은 우리를 떠나셨으나
우리는 님을 보내지 않았나이다(‘06. 10. 26. 최영호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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