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여성살이 /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버리고 도망친 여고생이 입건’ 됐단다. 한 방송사 카메라가 여학생이 홀로 아이를 낳았다는 화장실을 ‘무심히’ 비추는데 내 속에선 열불이 났다. 제주도 수학여행 길에서 산고를 치른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지난달 고교에 입학해 아침 보충수업과 저녁 ‘야자’에 힘겨워하는 내 딸과는 동갑내기 소녀.
난 세상의 나쁜 일들이 나만 비켜갈 거라고 생각질 않는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내 딸이 임신한 여고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맙게도) 그 사실을 이 어미에게 고백해 준다면 일단 딸을 끌어안고 함께 울고 싶다. 그리고 말해 주고 싶다. “딸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란다.” 일이 그 지경이 되도록 주위에 도움을 구할 어른 하나 없이, 끝내 차디찬 화장실 바닥에서 극한 공포로 인해 산통조차 느낄 새도 없이(통증을 인식하는 것도 뇌의 소관이다) 애를 낳고 탯줄을 잘랐을 소녀에게도 같은 말을 들려 주고 싶다. “애야, 이건 네 잘못이 아니란다.”
딸이 학교에서 성교육이란 걸 받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게 30년 전 내가 배웠던 방식인 ‘정자, 난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낙태 비디오는 보여주면서 왜 정작 콘돔을 비롯한 피임법은 설득력 있게 가르쳐 주질 않는 걸까. 낙태율 세계 1위라는 오명은 콘돔 사용을 기피하는 한국 남성들의 무지를 수치로 보여준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란 일본 로맨스 영화가 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였는데 딱 한 장면만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중반. 고교 2학년인 남자 주인공이 동급생 여자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게 되자 친구가 내미는 선물은 다름아닌 콘돔. 그렇다! 사랑을 시작하는 친구에게 최고의 선물은 콘돔인 것이다. 밑줄 쫙, 돼지꼬리 땡땡!
이 글을 쓰려고 각종 포털사이트에 ‘콘돔’을 검색했더니 성인 인증이 필요한 ‘19금 단어’라고 나온다. 춘향전의 두 남녀 주인공이 이팔청춘이었음을 다 아는 십대들에게 언제까지 순결과 금욕 타령으로 현실을 눈감게 할 수 있을까. 연인 사이에 초콜릿이나 사탕만 말고 콘돔을 선물하는 날을 만들자!
또 언제까지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버린’ 여학생을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 받을 것인가. ‘범행’에 가담한 ‘썩을’ 공범은 어디서 무얼하고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홀로 온 세상의 돌팔매를 맞아야 하는 거냐고 분노해야 한단 말인가. 콘돔의 생활화! ‘비오는 날엔 반드시 장화를 신읍시다.’
글쓴이 : 김연/소설가
'성(姓)'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러브사인! 술자리 유혹의 심리전 (0) | 2009.05.01 |
---|---|
<스크랩>당신은 얼마나 사랑받기 적합한 사람인가? (0) | 2009.04.17 |
<스크랩>남자가 꼭 먹어야 할 음식 (0) | 2009.04.08 |
남자친구가 혼자만의 시간을 원할때..... (0) | 2009.04.05 |
이별을 통보할 때 명심해야 할 6가지 (0) | 2009.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