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치일과 Halloween
1
1957년 8월 29일, 횡성중ㆍ고등학교 운동장.
개학 첫 날의 조회시간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 ?’
단에 오르신 송달헌 교장 선생님께서 거두절미(去頭截尾)로 하신 말씀이었다.
약 600여 명의 중ㆍ고등학교 전 교생이 묵묵부답(黙黙不答)이다가 한참 뒤에서야
고등학교 형들이 있는 저 쪽에서, ‘국치일입니다’하는 대답이 나왔다.
선생님께서는 한사람일지언정, 그래도 아는 학생이 있음을 기뻐하시면서
국치일이 어떤 날인지를 설명해주셨다.
1910년 8월 29일.
‘한국황제폐하와 일본국황제폐하는 양국간의 특수하고 친밀한 관계를 회고하여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코자 하는 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만 같지 못한 것을 확신하여 … ’로 시작되는
소위 ‘한일합방조약 (韓日合邦條約)'이 체결되었다.
그 후 뜻있는 사람들이,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반성의 날로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60갑자상의 1910년에 해당하는 경술(庚戌)년에 당한
나라의 치욕이라는 의미로 ‘경술국치(庚戌國恥)’ 혹은 줄여서 ‘국치일’이라 했던 것이다.
( * 한일합방조약이라는 명칭은, 한ㆍ일 두 나라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의하여 합쳐졌다는 의미로,
일제(日帝)의 입장에서 사용되었던 것이므로 우리는 경술년에 당한 나라의 치욕이라는 뜻에서
'경술국치' 혹은 ‘경술강제병합(庚戌强制倂合)’으로 고쳐 불러야 할 것이다.)
2
10월 31일, 오늘은 할로윈 데이(Halloween)다.
도깨비ㆍ마녀ㆍ해적 등으로 가장한 어린이들이 망령의 갈 길을 밝혀준다는 뜻이 담긴
호박으로 만든 등(Jack-o'lantern)을 들고 가장행렬ㆍ가장무도회를 하고,
어른들에게 으름장을 놓으면서 풍선껌이나 캔디ㆍ과일 등을 얻어가는
고대 Celts인의 Samhain축제에서 비롯된 미국 어린이들의 축제다.
아직은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 데이처럼 익숙해진 외국 명절은 아니라서
일부 영어학원과 영어유치원에서만 법석을 떠는 모양이지만
아마도 머지않아서 어린이날보다도 더 크게 지켜질 것이 손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뻔하다.
3
송달헌 선생님께서 국치일을 설명해주신 때로부터 어느덧 50여년이 지났다.
국사를 홀대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질 않아서
이제는 학교에서조차 국사과목을 아예 없애버린 것이나 다름없이 돼버린 대한민국이라는 집구석에서,
설사 6,000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물어본들 8월 29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 날인지
아는 학생이 있을까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달력에 국치일이라는 표기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나마도 없어졌다.
국경일과 경축일만 빨간 숫자로 표시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욕된 역사를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의미에서
국치일을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기할 것을 제안한다.